![]() 1권과 2권을 다 읽은지 어언 1년이 지난 시점에 미학 오디세이 3권을 읽기 시작했다. 3권은 1권과 2권이 나온지 10년이 지난 후, 따로 나온 책이라 사실 미학 오디세이 별책으로 여겨야 할만한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에셔와 마그리트라는 두 인물로 풀어갔던 1,2권에 비해 피라네시라는 인물은 많이 약하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앞에 두 인물과는 다르게 그림 속에 담겨진 모순을 잘 보이지 않게 숨겨놓아서 그걸 찾기가 힘들었고, 더군다나 판화로 그려진 그림이라 그림도 잘 보이지 않았다. 책 말미에서 왜 피라네시를 택했는지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치더라도 책의 전반적인 흥미를 반감시켰다는 데에서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려웠다. 책의 흥미진진함은 앞의 두 권에 비해 떨어지지만 말솜씨는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 미술을 여러가지 그림과 설명을 통해 풀어냈기에 완벽히 이해는 못해도 읽을 당시 고개를 끄떡이게는 된다. "시뮬라크르와 스뮬라시옹"에서 나오는 현실과 가상에 대한 이야기는 예술이 현실에서 떨어진 존재가 아닌 지금의 현실을 인식하고 재인식하게 하는 것임을 이야기 해준다. 가상이 현실을 뒤업고 가상이 현실이 되어버린 세상. 우리는 결국 매트릭스를 알면서도 매트릭스 속에 살아가고 있을 뿐임을 다시 한번 인지해준다. 네오 매트릭스를 무너뜨리고 사람들을 구하는 것을 보는 순간 또 다른 매트릭스가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플라톤 : 그럼 내 말이 맞지 않나. 우리가 눈에 보는 현실은 한갓 가상에 불과하다. |
글검색결과 [Element] : 34 개
- 2010/03/07 미학 오디세이 3
- 2010/02/21 빈곤에 맞서다 (3)
- 2009/12/31 분단의 향기 (2)
- 2009/11/08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We think) (2)
- 2009/10/10 여행책 1권
- 2009/06/18 인간실격
- 2009/06/09 88만원세대
- 2009/04/20 대한민국 표류기
- 2009/03/17 위트상식사전(미완)
- 2009/01/05 현대사진을 보는 눈
![]() 친구의 부름에 술자리에 갔다가 졸업하고는 처음으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게 되었다. 비록 나는 그 친구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도 기억이 안난다...-ㅁ-) 그 친구에게 몇살 아래인 남동생이 하나 있다고 한다. 이번에 휴가를 나오면서(친구는 ROTC로 복무 중) 동생을 만났는데 동생을 만나는 동안 자기가 모든 돈을 냈다고 했다. 일주일 동안 같은 옷만 입고 있어서 옷도 사주고 밥도 사주고. 돈 없이 생활하던게 너무 힘들었던지 "나는 돈을 엄청 많이 벌꺼야"라고 말할 정도로 돈에 대한 한이 눈에 보였다고 한다. 친구 말로는 그 나이 또래에 노는 여자애들에게 동생이름을 말하면 갑자기 애들이 싹싹해질 정도로 고향에서는 잘나갔던 동생이었다고 하는데, 고등학교 때 잘나가는 애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바로 세상에 내몰린 것 같다. 친구 말로는 자기집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라고 했으니, 아마 대학도 안갔을 것이고 졸업하고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르바이트 뿐이었을 것이다. Free라는 단어가 왜 붙었는지 이해는 못하지만 일본 프리타의 한국판이 바로 친구 동생이라고 할 수 있을거 같다. 우리가 일본을 말할 때,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10년이 뒤쳐져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 말을 반대로 해석하면 지금 일본의 모습이 10년뒤 우리나라의 모습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90년대 초반 일본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황의 늪은 완전고용이라는 일본의 문화를 180도로 바꾼 계기였다. 그 후의 이야기는 IMF를 겪은 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대기업, 은행들이 하나둘씩 무너졌고 완전고용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노동유연성이라는 명목으로 정규직 일자리들은 하나둘 비정규직으로 대체되었고, 한창 일을 하고 있는 세대에게는 해고의 불안감이, 일을 잡으려는 사회 초년생에게는 비정규직의 불안감이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불안감이 가속화되고 사회가 점점 더 하향평준화 된다는 것을 가장 절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도시 곳곳에서 늘어나는 노숙자들의 숫자였다. 의식주,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이 3가지 요소도 충족시키지 못한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사회가 안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이다. 지은이의 글 중 가장 신선했던 것은 '다메'에 대한 이야기였다. 일본어로 '저수지'를 뜻하는 다메xx에서 따왔다고 하는 이 단어는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 사회적 여유(자본)을 뜻한다. 각자 가진 다메의 크기에 따라 같은 위기에 처하더라도 대처와 결과는 달라지게 된다. 일거리를 구하지 못해 잠자리나 밥 걱정을 하게된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에게 부모라는 다메가 있다면, 부모가 가진 집과 부모가 제공해주는 밥을 통해 잠시 찾아온 위기를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메가 작은 사람이라면, 즉 의지할 부모도 없고 도움을 받을 만한 친구도 없는 상황이라면, 잠시 찾아온 이 위기가 그 사람에게는 정말 절체 절명의 위기가 될 수 있다. 이런 개개인간의 다메를 고려하지 않고 빈곤 문제를 생각한다면 상당히 잘못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빈곤의 대물림 만드는 5중 배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교육과정에서의 배제, 기업 복지에서의 배제, 가족복지에서의 배제 , 공적 복지에서의 배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서의 배제까지. 빈곤은 이러한 5가지의 배제를 순서대로 만들어나가고 결과적으로는 자기 배제의 극단적인 사례까지 만들게 한다. 사회적 문제 또는 구조적 문제들까지 개개인의 잘못으로 돌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까지 배제하게 되는 상황까지 만들게 된 것이다. 내 글 솜씨의 한계상, 이 책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게 무척 아쉽다.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에게 꼭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특히, 역이나 지하도로에 있는 노숙자들이 막노동이나 해볼 생각을 하지 않고 왜 그러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더욱 더. 추가. 도움이 될만한 경향신문 기사 http://media.daum.net/economic/view.html?cateid=1041&newsid=20100221181709702&p=khan |
| 사람이 가진 짧은 기억력을 보면 얄팝하다고 느껴질 망큼 당황하게 만들 때가 있다. 2005년에 발간된 노순택 사진가의 첫 사진집인 분단의 향기의 첫장을 넘기면서 생각났다. 내년이면 벌써 남아공 월드컵이 열린다. 2002년 여름의 뜨거웠던 기억도 식은지 벌써 오래이다. 4년 후에 가졌던 기대가 2002년과 같지 않았기에 내년 월드컵도 2002년 때와 같을 순 없을거라 직감한다. 이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생각일 것이다. 그와 같은 성적을 낼수도 없을 뿐더러 그와 같은 성적을 내더라도 기쁨이 예전과 같을 순 없으리라. 2002년 겨울, 그 해 여름만큼 뜨겁진 않지만 그 것만큼 특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전에도 있었는 지는 모르지만 "촛불시위"라는 단어를 머리 속에 각인하게 된 일이었다. 내 나이 또래의 두 여중생의 사망, 그리고 가해자인 미군의 무죄판결은 우리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우리들 중 몇명은 종이컵에 끼운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삼삼오오 나가 모였다. 그리곤 이 사건은 일이 발생한지 6개월만에 각종 TV와 신문에 오르내리는 사건으로 커졌다. 지난 여름, 사회에 관심도 없고 오로지 자신에만 관심있는 '개새끼'로 욕 먹던 세대가 바로 7년전 처음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모인 중, 고등학생, 그들이었다. 이 모든 사실들을 나도 잊었고 우리도 잊고 있었다. ------------------------------------------------------------------------------------------- 우리가 선진국이 되려면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분단이라는 상황을 가지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We think)
Element | 2009/11/08 22:40
|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와 함께 한상기 교수님이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소개해줬던 책이다. 위에 책의 내용과 겹치는 감이 없지 않았던 점과 번역자가 번역을 재미없게 한 점,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생각보다 심심하게 읽었다. We think라는 원제처럼, 이 책에서는 웹을 통해 다수의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모으고 협업하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 이러한 활동들이 단순히 웹이 나타나고 생긴 것이 아니라, 웹이 있기 전에도 수 많은 시도들이 있어 왔다는 사실을 역사적인 자료와 함게 설명해준다. 집단지성이라는 방식이 기존의 방식들의 전부를 뒤집어 엎을 수는 없겠지만, 기존의 방식들을 대체하는 분야가 있게 될 것이고 이 두가지가 공존하는 사회로 가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한가지 신기하게 보았던 점은 온라인 게임을 집단 지성의 사례로 보았다는 것이다. 게임의 운영자는 단순히 게임이라는 도구만 제공해주었을 뿐, 거기에서 만들어지는 캐릭터, 클랜 등은 사용자들이 게임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집단 저작물의 예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거의 유일무이하게 참여자들이 시간 뿐만아니라 재정적으로도 지출을 하는 사례라고 말한다. "끌리고 쏠리고 들끊다"의 클레어 서키가 말했듯이, 웹을 통해 공유하고 협업해서 작업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관리와 동기 제공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특히 동기의 경우는 기존 시스템(직장)에서 제공해주던 경제적 해택을 통한 동기 유발이 아닌, 사회적 명성, 사용자들의 흥미유발과 같은 비 경제적인 혜택을 줘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구절 하나를 옴긴다. 강력한 브랜드를 가진 조직은 안정된 상품과 서비스를 세계적인 규모로 창출해야 한다. 세계 어디를 가도 스타벅스, 코카콜라, 마이크로소프트는 똑같다. 이런 상황은 작업방식이 고도로 체계화된 경우에만 보증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새로운 기술과 경쟁자와 소비 트렌드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따라서 현실에서는 새로운 기술과 경쟁자와 소비 트렌드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조직은 혁신과 적응이라는 더욱 강도 높은 도전을 감당해야 한다. 혁신은 낡은 아이디어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비트는 데서, 더 나아가 규칙을 변모시키거나 깨뜨리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데서 나온다. 효율성과 혁신이라는 두 가지 압력은 직원들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밀어낸다. |
공학도였던 그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다니던 어느날....(생략) 도서관에서 숙제를 하다가 누군가 반납을 안후 서가에 배치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책 한권을 발견하였다. 크로아티아에 대한 사진과 글이 실린 여행기였다. 가볍게 읽기 좋은 것 같아서 골랐는데, 너무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다.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는 책은 짧막짧막한 글로 채워져 있는데, 글쓴이가 시간에 쫒겨가며 여행을 해서 그런지 손에 오그라드는 표현들이 많다. 순수한 이방인의 눈으로, 누가 보면 자유여행이 아닌 여행기 깃발을 따라다니면서 쓴 여행기 같다. 편집에도 문제들이 곧곧에 보인다.. 어두운 색 사진 위에 검은 색 글씨를 쓰지 않나. 가로 사진을 위, 아래로 테두리 없이 붙여놔서 두 장의 사진인데 한장의 사진처럼 보이지 않나. 유령이 쓴 책 마냥, 수 많은 사진들 중에서 글쓴이나 사진가의 모습은 단 한장도 찾아볼 수 없질 않나. 글쓴이가 현지에서 그린거라고 생각했던 일러스트들도 알고보니 추후에 일러스터를 시켜서 그린 것이고.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여행책이다. '이걸 굳이 책으로 낼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될 정도로. |
| 뭔가 일이 손에 안잡힐때는 책을 읽는게 가장 좋은 것 같다. 나는 책을 한권 읽으면 한동안은 저자처럼 생각하고 생활하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어 지금 미학 오디세이를 읽고 있다면, 그 책을 읽는 동안에는 미학에 대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독서가 가장 좋은 간접체험이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그 간접체험을 직접체험으로 바꾸어 경험하려고 한다. 책을 읽은지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그러한 효과는 사라진다는게 문제지만. 어쟀든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고른 책이 바로 저 기분 나쁜 제목의 '인간 실격'이다. 저 책을 왜 골랐냐고 물은다면, 카라처럼 당당하게 걸으면서 "민음사 전집중에 얇은 책이 저거 였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별 이유는 없었다. 지금 책 읽기 대기열에 들어있는 책들이 너무 두꺼워서 도무지 기분 전환이 안되었기에 얇은 책이 필요했을 뿐이다. 책은 지은이인 오사무 다자이의 실제 일생을 중심으로 약간의 허구가 섞여있는 식이다. 이를 테면, 10명의 형제중 막내로 태어난 주인공이라던가(지은이는 11명의 형제중 10번재로 태어남), 21살에 첫 자살을 실행해서 같이 자실한 여자만 죽고 자신은 자살방조로 기소되었던 이야기라던가, 대부분의 그의 일생 그대로를 말하고 있는 자전적 소설이다.
위에 글은 책을 보면서 적어놨던 내용들이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초반의 몰입도가 강했다. 그리고 그 몰입도는 주인공이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가면서 후반 내용에 대한 무서움으로 바뀌었다. 아이러니하게 어제 이 책을 다 읽기 전에 본 영화가 록키 발보아다. 록키에서 실베스타 스탤론이 승부에서는 질지언정 인생에서는 포기하지 않는 모습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면, 인간 실격에서 요조는, 즉 지은이인 오사무 다자이는, 인간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착한 인간이기에 인간임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인간상의 절정을 보여준다. 사실 역사를 보면 도무지 정의가 승리했고 아름다움이 살아남았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면서도 그런 비인간적인 과정들을 딛고 일어서서 지금의 인류를 만들었다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놀랍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내가 희망하는 꿈의 본질은 똑같은 것 같다. 세상을 위한 또 하나의 진보. 그것 마치고 세상을 떠나야 후회 없는 삶이라 말할 것이다. ps. 예전에 홍대 3대 미녀로 불리는 요조가 인간 실격의 주인공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기사를 본게 생각난다. ps2. 자살을 긍정하고 긍지로 여기는 일본 문화에 대해 공부해 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특히, 독일과 일본이 가지고 있는 제국주의 시절에 대한 역사인식이 정반대인 이유 중에 하나가 저기에 있을 것도 같다. 자살을 할 일본군들은 신사에서 참배를 받는 신화가 되었지만, 뉘른베르그에서 전범재판을 반은 나치들은 죄인이 된 것처 |
![]() 2007년 혜성 같이 등장하여 각종 올해의 책 부문을 휩쓸고는 2008년 하나의 아이콘의 되어버린 '88만원세대'. 베스트셀러를 싫어하고 안 읽으려고 하는 내 독서 습관이 그렇듯이, 나 스스로 여기에 쓰인 88만원세대를 여러번 인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저 책을 읽지 않고 오다가 결국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책의 소감을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제서야 이 책을 읽은 것일까?", 이 문장 하나로 표현 될 수 있겠다. 조금 더 빨리 읽었다면 내가 속해있는 현 20대가 정확히 어떤 상황에 처해있고 어떤 대책이 있을 수 있는 지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책은 지금 20대들이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 처한 현실에 대해 직설적으로 이야기 한다. "이대로 가다간 20대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 이 책을 읽은 내 친구는 이러한 표현들이 때문에 이 책으로부터 좌절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오히려 하나의 희망으로 다가왔다. 88만원세대 이전에는 현 20대가 처한 문제점에 대한 심도 깊은 고찰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덕분에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한 공통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 갈 수 있는 발판 위에 함께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부모로부터의 물질적인 독립과 삶의 안정성을 찾지 못하고 있는 88만원세대의 문제는 더 이상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되는 문제이다. 저자의 말대로, 그에 대한 해답을 찾는 다면 우리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다면 남미의 국가들처럼 되고 말 것이다. 내가 88만원 세대를 보면서 느낀건데 |
| 내가 글쓰기의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가 바로 허지웅이다. 예전 썼던 포스트에서도 언급했듯이 그의 글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재미와 생각을 동시에 주는 놀라운 매력이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내가 그의 책을 사게 된것은 자명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허지웅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을 두 단어로 말해야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재미"와 "슬픔" 허지웅은 글을 재미있게 쓸 줄 아는 사람이다. 유식함을 표현하기 위한 수사가 아닌 읽는 이들의 재미를 느끼기 위한 수사를 쓴다. 그와 동시에 그 재미는 현재 시대상황을 풍자한다. 이것이 내가 느끼는 슬픔이었다.
그의 글은 현 20대의 모습을 반영한다. 논스톱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천국 같은 20대의 모습이 아닌,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수 많은 차들 중 단 하나도 가질 수 없는 20대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그에게서 슬픔을 느꼈던 이유는 그의 글 속에 있던 것이 아니라 바로 20대인 나 자신에게 있었다. 슬픔이 사라졌다. 허지웅 블로그의 애독자였기 때문에 책에 있는 대부분의 글들은 예전에 내가 보았던 글이었다. (단 한가지 글은 확실히 블로그에는 언급이 되지 않았다고 확신하는데, 이 글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책을 살만하다) 그러나 지금 다시 그의 글을 읽었을 때는 예전과 같은 슬픔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가 처한 상황, 즉 지금 20대들의 상황을 대변하는 모습들이 지금은 슬프다고 여겨지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 1년 생긴 인식의 변화 때문이다. 예전에는 비극 같은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던 내용들이 이제는 현실 그 자체로 인식하기에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왜 나는 반지하방에 살면서 뚜벅이로 다녀야 하지?"라는 우울한 질문을 했다면, 이제는 "원래 20대의 삶이란 그러하다. 내 스스로 집을 마련하고 내 힘으로 나 하나를 먹여살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라는 식이다. 지금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낙관적이라는 말과 긍정적이라는 말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긍정이라는 안 좋은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보는 방향이지, 현 상황 자체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당신은 착하고 멋지시네요"라고 말한다고 한들, 내가 착했거나 혹은 나쁘거나 하는 사실 자체는 바뀌지 않은 것처럼. 우리 세대에 대한 올바른 인식 있어야지만 그에 대한 대안과 방안을 찾아내 진정한 긍정을 이끌 수 있다. ......(생략) 나는 종교가 없다. 비록, 종교는 없지만 종교에서 말하는 이야기를 마음 속에 새기며 살아가고 있다. 종교마다 율법이 다르고 숭배하는 얼굴은 다르지만 근본적인 이야기는 단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착하고 선하게 살라" 성공에 대한 경쟁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의 기준으로 보기엔 허지웅의 말은 다소 이상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인류의 97%가 믿는다는 종교들에서 한결 같이 말하고 있는 이야기를 지킨다는 아주 평범한 다짐이다. |
현대사진을 보는 눈
Element | 2009/01/05 12:35
결정적 순간을 이야기한 카르티에 브레송,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건 충분히 가까이에서 찍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던 로버트 카파. 사람들이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모두 근대사진작가들이다. 왜곡이나 조작없이 있는 모습을 그대로 담는다는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을 존중했던 사진가들, 우리는 그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사진을 남겨주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현대사진은 피카소 이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를 포기해버린 현대예술과 같은 존재가 되어 외면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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